강원희 선교사님의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는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강원희 선교사님은 연세 의과대학을 다닐 때부터 ‘내가 무의촌 의료선교를 하겠다.
의사가 없는 곳에 가서 내가 자비량으로 선교하면서 저들을 고쳐줘야겠다’는
그런 거룩한 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가 사역을 시작한 곳이 강원도 고성이라는 곳인데 거긴 병원이 없어서 정미소, 방앗간을 빌려 가지고 한 구석에서 병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치료해주고 속초에 와서 사역을 하는데
지금 천국가신 한경직 목사님이 “자네 선교사로 가지 않겠나?” 그 말에 본인이 늘 기도하던
하나님의 음성이 목사님을 통해 들려온 것이라 생각하고
“네 가겠습니다.”
“네팔로 가게.”
그래서 그 바쁘고 일이 많던 그 성업중이던 그 병원을 문을 닫고 네팔로 선교사로 떠난 것이 사십 구세입니다.
요즘 젊은 사역자들도 선교사 가라고 하면 ‘왜 하필이면 접니까?’ 이러는데
사십 구세가 돼서 이제는 좀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 분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네팔에서 10년 동안 저들을 사람들을 섬기고 치료해주고, 뱅글라데시에서 4년,
스리랑카에서 4년, 이티오피아에서 7년, 약 30년 동안 가장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
에게서 주의 사랑을 전합니다.
네팔에서 가서 그가 굉장히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존경받게 된 것은, 갑자기 수술을 하는데
그 수술이 끝난 다음 화자가 쇼크에 빠져서 치료하려고 보는데 피가 없어요.
그래서 조사해보니 자기하고 혈액형이 맞아가지고 그 자리에서 400cc 큰 병 두 병을 뽑아서 수혈해줍니다.
이렇게 그가 회고합니다.
"수술이 끝난 다음 환자가 쇼크에 빠졌는데 피가 준비되어있지 않았어요.
얼른 제 피를 뽑아서 맞춰 보니 환자와 맞아서 2병(400㏄)을 뽑아 줬죠.
때로는 너무 힘들어 ‘하나님, 데려가십시오.’라고 기도도 하고,
현지인들에게 맞아 죽을 뻔 하기도 했지만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그 치료를 지켜본 모든 마을 사람들이 우리 친할아버지와 같다 그래서 그를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따랐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 칠십 팔세가 되었는데 다시 네팔로 들어갑니다.
이러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날개 치는 독수리 같은 힘을 다시 주셨고,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10년은 족히 더 사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섬기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렇게 섬기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겠지요. 살아도 천국이고,
부르시면 정말 천국에 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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